미술세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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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선 개인전 기사가 나왔습니다.
나이프로 부활한 코이아트
전미선 작가는 잉어를 소재로 한 (KOI) 시리즈로 싱가포르,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받아 왔다. 하지만, 잉어 그림은 이미 오늘날의 컬렉터들에게 주요 관심 대상은 아니며,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오랜 전통 때문에 이제는 평범하기까지 한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미선 작가의 (KOI) 시리즈는 그 첫 발표 무대인 싱가포르에서 컬렉터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하더니, 이어진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도 역시 많은 컬렉터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잉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만으로 컬렉터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시대가 아님에도 전미선 작가의 (KOI) 시리즈가 이처럼 많은 컬렉터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한.중.일 동양 3국의 잉어 그림의 전통을 살펴보자. 잉어는 일찍부터 동양 3국에서 즐겨 다뤄온 전통적인 소재였다. 그 기원은 중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식은 이후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수많은 전설 속에서 잉어는 행복과 재물을 가져 다 주는 용의 화신으로 다루어졌는데, 긴 수염과 비늘의 모습에서 용의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잉어 그림은 폭포수를 향해 돌진하여 용이 되는 장면이다. 폭포수를 역류하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소수의 잉어들은 용으로 승천한다고 사람들은 믿었고, 그래서 중국인들은 어려운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한 학생이나 커다란 난관을 뚫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 사람들에게 ‘잉어가 용의 관문을 통과하였다(鲤鱼跳龙门)’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소위 ‘코이아트(KOI art)’라 불리는 장르가 존재하는데, 사실상 일본의 전형적인 판화 양식인 ‘우키요에’를 통해 잉어 그림을 세계적으로 전파했다. 우키요에가 유럽에서 인기를 얻게 되자 잉어 역시 인기 있는 소재로 부상하게 되었고, 카츠시카 호쿠사이와 같은 우키요에의 거장들 역시 잉어의 형상을 줄곧 우키요에로 작업해왔다. 한국에서도 잉어 그림은 ‘어해도(魚蟹圖)’라 해서 메기. 붕어. 새우. 가자미 등과 함께 인기 있는 소재들 중 하나였으며, 서로 화합하고자 하는 궁합 사상 등의 의미로 잉어 등을 많이 그려왔다. 특히 19세기의 장한종은 잉어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이 외에도, 김인관. 심사정 등이 잉어 그림을 즐겨 그렸었다.
이처럼 유서 깊은 잉어 그림의 전통을 바탕으로 전미선 작가는 전통적인 잉크와 화선지 대신에 유화물감과 나이프를 갖고 캔버스 위에 전혀 새롭게 해석을 하고 있다. 혹자는 전미선 작가의 (KOI) 시리즈가 단순히 전통적 잉어 그림들을 먹과 붓 대신에 유화로 옮긴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미선의 (KOI) 시리즈에는 작가만의 해석이 다양하게 담겨 있으며, 바로 이 지점이 관람객들은 물론 세계 여러 컬렉터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잉어들이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전형적인 모습은 전미선의 (KOI) 시리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전통적인 알레고리나 상징들은 새롭고 현대적이며, 유럽 특히 로저 프라이(Roger Fry)나 클라이브 벨(Clive Bell) 등으로 대표되는 형식주의적 미학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새로운 작품들을 보고 그의 전통적인 상징성보다는 잉어를 주제로 화면에 형성되는 강력한 리듬과 에너지, 그리고 나이프를 통해 형성되는 특유한 질감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열정과 혼에 더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전미선 작가는 특히 나이프를 정교하게 다룰 줄 아는 화가이다. 전통적인 동양화가들의 붓을 통한 먹의 강약조절, 혹은 준법의 표현들은 이 작가의 나이프를 통해 색채의 강약조절, 윤곽과 거리 혹은 깊이의 정교한 조절 등을 통해 전통적인 매체들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된다. 특히 나이프라는 도구에 적합한 표현이 되기 위해 전통적인 잉어 그림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힘찬 형태로 해석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멀리서 보면 잉어 형상들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터운 물감 덩어리들의 강약과 나이프 특유의 터치로 지극히 추상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이는 음악에서 편곡과 유사하다. 편곡자들은 원래 음악에 사용된 악기가 아닌 새로운 악기를 도입할 때, 그 악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원래의 곡과는 또 다른 해석을 가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원곡의 멜로디를 옮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악기의 구조와 특징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며, 그 악기의 구조에 맞게끔 새로운 편곡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미선 작가는 전통적인 잉어 그림을 특유의 나이프 표현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이를 새롭게 재해석한다. 작가에 의해 재해석된 것들을 하나하나 음미해볼 때 우리는 이전의 잉어 그림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된다.
글 / 이영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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